3. 남해에 이름난 총각 귀신 천도(薦度)
이 이야기는 왜정 시대에 남해군 삼동면 고천리에 사는 배환구(裵煥球) 씨가 직접 보고 구술한 것이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고천리(慶南 南海郡 三同面 古川里)에는 총각 귀신이 나타나 그 일대 사람들 사이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의 일이다.
고천리에는 이치상(李治相)이라는 사람의 큰딸이 과년하여 이웃 동네로 시집을 갔다.
그날 저녁, 신부가 시댁 조상을 뵙는다는 풍속에 따라 진수성찬과 과일을 차려놓고 밥을 짓고 떡을 쪄놓았다.
그런데 잠시 부엌을 비운 사이에 밥과 떡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시댁에서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의심하며 다시 밥을 지었으나, 솥을 열어보니 빈 솥뿐이었고, 밥이 없었다.
시댁에서는 이것이 귀신의 장난이라 여기며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때 지감(智鑑)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신행(신부가 시댁에 가는 날)을 잘못 골라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친정으로 돌아가 예방을 하고 다시 오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친정에서도 귀신을 달래기 위해 밥과 떡을 준비해 놓았으나, 역시 솥은 빈 솥이었고 음식은 사라지고 말았다.
집안에서는 이것이 무슨 재앙인지 크게 걱정하며 야단을 쳤다.
그러던 중 큰딸의 눈에 웬 총각이 와서 밥과 떡을 가져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말하기 어려워 참고 있다가 결국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기에 어머니는 딸에게 “그 총각이 보이면 꼭 붙잡아 왜 그러는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 후 총각이 다시 나타나자 딸이 물었다.
“대체 당신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와서 장난을 치는 것입니까? 속 시원히 말씀해 보세요.”
그러자 귀신 총각이 대답했다.
“나는 삼동면 면직원의 아들로,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이 동네 앞 냇가를 지나가다가 당신이 빨래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울적해져서부터 밤낮으로 당신을 사모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입맛도 없어져 점점 쇠약해졌지만, 잘사는 집안의 딸과 못사는 우리 집 형편 차이가 너무 커 청혼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혼자만 짝사랑하다가 시들어 죽었소. 그러던 중 당신이 다른 집으로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아 죽은 넋이라도 당신을 따르고 싶어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
이 말을 들은 큰딸은 아무것도 모르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밥과 떡이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오?”
하자, “나는 귀신이 되어도 얻어먹지 못해 굶주린 귀신이 되었소.”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밥과 떡을 많이 주겠으니 실컷 먹고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마시오.”
하고 음식을 풍부하게 주었으나, 밥과 떡은 여전히 사라졌다.
더욱이 신부의 신랑이 처가에 와서 자면 돌멩이를 던지고 지붕에 불을 지르는 등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신랑도 크게 놀라 다시는 오지 않고 다른 처녀와 결혼하고 말았다.
결국 큰딸은 마을 밖에 움막을 짓고 혼자 살게 되었는데, 총각 귀신이 와서 그녀를 괴롭히면 몸이 점점 말라 수척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병색이 뚜렷해졌다.
이치상 씨 부부는 딸을 위해 무녀를 불러 굿을 하고, 장님을 모셔 경을 읽게 하며 침 잘 놓는 한의원을 불러 침도 맞히고 약도 먹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딸은 총각 귀신에게 시달리며 7년이나 고통을 겪었다.
그러던 중 남해 용문사(龍門寺)가 지장도량임을 알고 계신 덕망 높은 스님께서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치상 씨에게 말씀하시길, “당신 딸을 위해 절에 와서 3~7일간 지장 기도를 모시고 천도재를 봉행해 보라”고 권하였다.
이치상 씨는 “그렇지, 다른 것은 다 해 보았으나 지장 기도와 천도재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스님의 말씀을 따라 용문사에 가서 딸을 위해 총각 귀신 천도 기도를 올렸다.
회향 날에 재를 올리고 법사 스님을 청하여 독경과 설법을 하였더니, 그만 총각 귀신이 천도되어 갔고 딸은 몸을 회복하여 완쾌되었다.
그러나 딸은 소문이 너무 나빠 장가 들려는 사람이 없었기에, 결국 몸을 화류계에 던져 술장사를 하며 열심히 염불 공부를 하는 불교 신자가 되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나 의식 걱정 없이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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